요 하루 이틀 사이에 방송인 사유리씨가 엄청난 이슈가 되었다. 출산을 했다는 소식. 출산은 축하 받아야 할 일이 당연하지만 여기서 이슈가 된 이유는 바로 사유리씨는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것. 정자기증을 받아 임신을 했고, 출산까지 한 사례라는 것이다.
사유리씨가 던진 무거운 이슈에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많아 나도 곰곰히 생각 해 보기로 하고 깊이 생각을 해 봤다. 우선 내 생각을 밝히기 전 2일 됐지만 그 동안 이슈가 되었던 법 조문을 한번 살펴보고 가자. 각종 기사에 사유리씨가 일본까지 가서 정자기증을 받고 거기서 출산 한 이유가,
1. 우리나라에서는 정자기증을 받기 위해서는 배우자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것.
2. 난임 시술이라고 불리는 '보조생식술'을 하기 위해서는 난임의 조건을 충족해야 하는데 그 '난임'의 조건에 부부라는 조건이 들어간다는 것.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제4장 배아 등의 생성과 연구 제2절 배아생성의료기관 제24조(배아의 생성 등에 관한 동의) 배아생성의료기관은 배아를 생성하기 위하여 난자 또는 정자를 채취할 때에는 다음 각 호의 사항에 대하여 난자 기증자, 정자 기증자, 체외수정 시술대상자 및 해당 기증자 시술대상자의 배우자가 있는 경우 그 배우자가 있는 경우의 서면동의를 받아야 한다.
모자보건법 제2조(정의) .."난임(難姙)"이란 부부(사실상의 혼인관계에 있는 경우를 포함한다. 이하 이 호에서 같다)가 피임을 하지 아니한 상태에서 부부간 정상적인 성생활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년이 지나도 임신이 되지 아니하는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법 전공자는 아니지만 궁금해서 법조문을 찾아봤다. 법조문은 정말 논리적으로 간결하게 적혀 있기 때문에 나 같은 법 무지랭이라도 찾아서 정독 하다보면 머리 속에서 뭔가 어렴풋하게나마 정리가 된다. 이번 사유리씨의 이슈에서 걸리는 법조문이 아마 위에 박스 안에 들어 있는 두 가지의 법조문이 아닐까 싶다.
위 박스 안에서 기울임+밑줄이 있는 곳을 보면 그렇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에서는 '있는 경우'라는 단서가 달려 있다. 이는 내가 이해하기에 배우자가 있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지 않나 싶다.
모자보건법에서 말하는 난임의 정의에는 꼭 부부여야 한다고 명시가 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해당 법 전체를 보면 난임에 관련한 정책 등의 언급이 있는데 이와 관련하여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지원하는 부분 때문에 정의를 별도로 내리고 있는 것이지 부부가 아닌 경우 시행할 수 없다고 나와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즉, 우리나라에서 정자기증 및 난임 시술이 모두 불법이라는 것은 사실이 아닌 것. 단, '대한산부인과학회'의 보조생식술 윤리지침에 명시가 되어 있는 부분이 있다. 즉, 법적으로 문제는 없는 것으로 보이나 의료계에서 자율적인 가이드라인을 정했기 때문에 사실상 안된다는 말이다. 다시 한번 반복해서 이야기 하자면 정자기증과 난임시술은 법적으로 부부가 아니어도 할 수는 있지만 의료계에서 진행하지 않는다.
깔끔한 내용을 보고 싶다면 링크 한 기사를 참고 해 보도록 하자.
news.mt.co.kr/mtview.php?no=2020111811387697681
뭐 일단.. 한마디로 이야기 하자면 독특하다. 사유리씨의 방송용 콘셉트가 한국말이 어눌하면서 4차원 이미지를 가진 캐릭터를 구축하고 있어서 그렇게 보이지만 작가라는 직업도 겸하고 있고, 사유리씨의 글을 읽어보면 결코 방송에서 보이는 이미지와 같지가 않다고 한다. 아래 링크 해 놓은 어디 예능프로그램에서 장동민과 통화하는 말투를 들어보면 한국말이 전혀 어눌하지 않다는 것도 알 수 있다.
누구라도 이런 사건이 있었다면 이슈가 될 것이 뻔한데 평소에 독특한 정신세계를 가진 것으로 이미지화 되어 있는 사유리씨의 사건이라서 더더욱 이슈가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생각하는 중요한 부분은 비혼모, 비혼부에 중심을 맞추어야 할 것이 아닌 것 같다. 바로 태어난 아이에게 중심을 맞추어야 하지 않을까?
세상이 점점 바뀌어 가고 있다. 옛날이라고 말 하기도 어색한 몇년 전만 하더라도 감히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입에 담기도 어려웠을 일이나 사건들이 이제는 당연시 되는 방향으로 시대가 변하고 있다. 그렇게 사회가 진보하는 방향이 정해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러한 사례는 점점 더 늘어갈 것이고, 지금은 상상하지도 못한 일 들이 또 새롭게 이슈가 되는 시대가 금방 올 것이다.
지금 현재의 제도로는 따라가기가 버거운 것 같다. 물론 법과 제도를 만드는 부분에 대해서 변화하는 시대를 막연하게 따라가면 절대 안된다고 생각 한다. 비판적으로 판단해야 하고 특히 법이라는 제도는 한번 정해지고 나면 변경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지만 분명히 시대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그에 맞추어 법과 제도가 따라가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라고 본다. 이렇게 급격한 현실세계의 변화를 제도가 따라가기는 어렵고, 분명히 이로 인한 사각지대는 생기게 되어 있다. 제도를 만들고 질서를 구축할 때 앞으로 생길 일을 예측해서 만들게 되면 매우 좋겠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크다. 그렇다고 해서 손 놓고 있다가 맹점이 발견된 이후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으로 제도를 정비하는 것 역시 비난을 피하기는 어려운 것이 당연하다. 이 두 가지의 어려움 속에서 중심을 잘 잡아야 할 것.
뭐 법을 만들고 제도를 정비하는 것에 대해서는 공부 많이 하고 똑똑한 국민의 대리인들께서 알아서 해야 할 일이니 현실적인 생각은 여기까지만 하도록 하고 이 이슈에서 내가 개인적으로 생각 한 아쉬운 부분과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자.
1. 사유리씨의 목적이 무엇이었을까? 아이를 갖고 싶었던 것일까 '출산'이라는 경험이 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이를 갖고 싶은 부분이었다면 입양을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각종 기사를 보고 방송 클립들을 보면 정황상 사유리씨는 명확하게 '출산'이 하고 싶었고, 여기서 출산을 함으로 인하여 입양과는 다르게 본인의 혈육이 생기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다. 만일 혈육이 중요하다면 이 궁금함의 주제인 '출산의 경험'은 의미가 없어지게 된다.
하지만 또 생각 해 보면 개인적으로 주위에 입양가정이 한두가정이 있다. 이 가정들은 입양한 자녀에 대해서 다른 가정이 혈육 자식에게 하는 것 그 이상으로 사랑을 주고 아끼는 모습을 보여준다. 어떤 생각을 하는지 글로만 본 내가 알 수는 없지만 출산이라는 과정은 매우 숭고한 과정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사유리씨가 해당 경험을 조금 더 중요하게 생각 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2. 본인의 의지라는 단어를 쓰기가 애매하기는 하지만 과연 본인의 의지가 없이 태어남을 '당한'아이는 과연 온전할까?
일본에서 '왜 나를 낳았는가'라는 이유로 소송이 있었다는 뉴스를 본 기억이 있다. 부모가 모두 있는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의 케이스이다. 모든 아이들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해당 케이스가 매우 독특한 부분이기는 하였지만 이러한 케이스도 있는데 정자기증을 통해서 태어난 아이가 나중에 크고 본인이 태어난 과정을 알게 되면 분명히 쉽게 납득은 잘 하지 못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3. 뿌리 찾기를 하고자 한다면?
아이가 자라서 본인의 친아버지(라고 말 하기는 이상하지만)를 만나고 싶다고 하거나, 정자의 주인이 그래도 자녀라고 보고 싶어 한다면 그 권리는 어디까지 인정을 해 주어야 하는가. 천륜이라고 하는 것을 어디까지 법 적으로 제한할 수 있을 것인가. 복잡하다.
이런저런 건을 생각 해 보는데 경우의 수가 너무 많다. 동거커플, 아이는 갖고 싶지만 결혼은 하기 싫은 사람, 대리모와 대리부 등등 많은 케이스가 있는데 이러한 시대적인 변화에 적극적으로 논의하고 대응하지 않는다면, 계속해서 미룬다면 많은 문제가 분명히 생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여러가지의 방법이 있다면 이 방향으로 시대가 변화하는 것은 막을수가 없다고 본다.
최근 반려동물(특히 강아지)을 입양할 때 관련 자격을 철저하게 맞추는 시험 같은 것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이 아이를 키우기 우해서 그런 자격을 평가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것이 딱 떨어지게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것이 없는 상황에서 참 어려운 문제이다.
오늘 글의 결론은 하나로 줄일 수 있겠다. 지금 생각 하고 있는 정상, 지금 우리가 정해 놓은 표준이 과연 미래에도 그렇게 적용이 될 것인가. 절대 그렇게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에도 '요즘 애들 버릇없다'라는 말이 적혀 있다고 하지 않는가. 고정관념과 편견을 깨야 할 필요가 분명히 있다. 원래 그런것은 없고, 무조건 적인 정상인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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