훔쳐보기
무가 왜 잘 안 잘리지?
감정, 마음에 대한 정리라는 것이 단칼에 무 자르듯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대방은 나에게 이별을 고했고, 여기서 제일 좋은 마무리는 마치 서로 몰랐었던 것처럼, 그냥 세상에 없었던 사람처럼 사라지는 것이 제일 좋은 이별 그 이후의 모습이지 않을까?
하지만 이별을 당한 나는 갑작스러운 교통사고 같은 느낌이라 그렇게 잘 되지 않는다. 매일매일 카톡 하고, 통화하다가 갑자기 없는 사람처럼 되어야 한다니.. 끓어올랐다가 식는 것이 오래 걸리는 나로서는 정말 고역이다. 그래도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하고자 했다.
- 술 먹고
- 실수로
- 밤에
- 감성적인 분위기를 못 이겨서
- 카톡으로
와 같은 최악인 실수 종합세트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카톡 설정을 바꿨다. '입력창 잠금'이라는 정말 좋은 기능이 있더라. 채팅을 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현해야 글을 적을 수 있도록 입력창을 잠구는 기능. 쉽게 해제할 수 있는 기능이지만 그래도 한번 더 브레이크가 밟히는 부분이라 자제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정 떨어지는 행동
이별 통보를 받고 달라진 것은 연락을 하지 못한다는 것 이외에도 몇 개가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소셜미디어 팔로우가 끊긴 것. 시스템적인 것은 자세히 모르겠지만 A의 의지로 팔로우가 끊겼다. 그래도 계정 검색은 되고(워낙 독특한 이름의 계정이라 자연스럽게 외워졌음) 게시물이 확인이 되었기 때문에 보고 싶을 때는 언제든지 볼 수 있었다. 그렇게 근황이라도 알 수 있었다.
내가 싫다고 이야기를 한 사람의 계정을 일부러 찾아 들어가서 살펴본다는 것이 당사자에게는 소름 끼치게 싫은 행동일 것이다. 잘못된 행동을 나는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한 가지 착각을 했다. '차단이 아니라 다행이다'라고..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정말로 없었던 사람처럼 사라졌어야 했다.
인스타그램에 24시간 이후 게시물이 사라지는 '스토리'라는 기능이 있다. 이 기능은 누가 봤는지 로그가 남는다. 즉, 내가 보면 내가 봤다는 표가 난다는 이야기다. A가 올리는 스토리를 몇 번 봤는데 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 계정 검색 자체가 되지 않는다. 차단이 된 것.
내가 입장 바꿔서 생각해도 정말 싫었겠다. 없던 정나미 까지 다 떨어졌겠지. 술 먹고 실수로 밤에 감성적인 분위기를 못 이겨서 카톡을 날린 것만큼의 병신 짓거리를 해 버렸다.
잘 지내나요?
이별 3주 후 또 하나의 잘못을 했다. 정말 너무너무 보고 싶었고, 이렇게 끝내기 싫었다는 변명을 해 보지만 이미 정나미 떨어진 상황에 한 최악의 잘못 이었다.
A에게 긴 카톡을 보내서 한번 잡아보려고 시도를 했다. '잘 지내나요?'로 시작하는 전형적인 꼴 보기 싫은 카톡. 다행히 '너 없으면 못살아', '나 죽을 것 같아'와 같은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내가 조금 더 잘할게, 내가 조금 더 노력할게 정도의 징징거리는 이야기를 했다. 결과는 당연히 예상한 것처럼 읽씹.
조금은 나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나의 단단한 착각이었다. 이미 내가 싫어졌고, 없던 정나미까지 떨어진 상황에서 쐐기를 박아버렸다. 정말 요만큼의 가능성마저 사라졌다.
이제 내게 남은 것은 천천히 식어가는 것 말고 남은 선택지가 없다. 쿨하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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