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물의 현상이 시기가 되어야 일어난다
모든 인연에는 오고 가는 시기가 있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만나게 될 인연은 만나게 되어 있고, 아무리 애를 써도 만나지 못할 인연은 만나지 못한다. 사람이나 일, 물건과의 만남, 깨달음에도 모두 때가 있다. 각자의 시절이 무르익을 때 연이 닿는다면 기필코 만나게 된다.
운명론을 믿나요?
개인적으로 운명론을 좋아하지 않는다. 만일 사람의 삶이 운명으로 정해져 있다고 한다면 아등바등 사는 사람들이 너무 불쌍하지 않은가? 그런데 가만히 다시 생각해 보면, 그때 그 시절이 아니면 절대 만나지 못하는 인연이 있기는 하다. 물론 해당 시절이 지나고 또 다른 시절이 되면 같은 사람을 다시 만날 수도 있겠지만.
삶에서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연애든 뭐든
한 손에 꼽을 만큼 몇 번 되지 않지만 과거 연애사를 돌아보면 나는 타이밍을 잘 맞추지 못한다. 아마 뒤에 다른 글에서도 언급을 하겠지만 마음과 감정을 표현해야 할 타이밍, 좋아한다고 고백해야 할 타이밍, 나가야 할 때와 멈춰야 할 때 등을 잘 맞추지 못했다. 이번의 이별도 그 타이밍이 한번 어긋나기 시작한 뒤에 급격하게 무너져 버렸다.
연애라고 말 하기는 애매한 이번의 만남에서 딱 하나 타이밍이 좋았던 것은 서로에게 등장할 당시의 타이밍인 것 같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기가 막힌 타이밍에 서로의 삶에 자연스럽게 등장했다.
나는 매우 긴 연애의 공백 기간을 가지고 있다. 연애하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지만 사실상 크게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냥 별생각 없이 툭툭 내뱉는 그런 말이었다. 그렇게 그냥 지내다 보면 누군가가 짠 하고 나타나지 않을까? 연애든 결혼이든 못하게 되면 또 뭐 못하는 대로 살아가겠지 라는 생각을 했었다.
상대방(앞으로 A라고 하자)의 상황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 내가 A를 언급할 자격도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된다. 사실 이렇게 익명으로 글을 쓰는 것 자체도 어쩐지 죄책감이 든다. 어쨌든 A는 이런저런 이유로 지금은 연애를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지만 힘든 상황 속에서 누군가가 필요한 타이밍이었다.
'썸' 보다는 '연인'에 조금 더 가까운
처음에는 각자의 직장에서 업무협조를 하는 관계로 연락을 트게 되었고 하루에도 몇 번씩 업무적인 연락으로 메시지를 보내고, 통화를 하고, 주중에는 한 번씩 미팅을 가지기도 하다가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여전히 명함에 적혀 있는 호칭을 서로 사용했지만 한 달 정도 업무적으로 연락을 하다 보니 딱딱한 업무연락에서 부드러운 업무연락을 하는 정도의 사이가 되었다.
그러다 어떤 이유로 내 신변의 변화가 생기게 되었고, 그동안 계속해서 나와 업무를 진행하던 A였기에 이런 일이 생겼다고 연락을 줬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놀라기는 했지만 그 이후로 서로를 부르는 호칭이 바뀌었다.
이제 각자 다른 일을 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꾸준한 연락을 이어 나갔고, 하루에도 몇 시간씩 메시지를 보내고 통화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어느 순간이라고 특정 지어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서로가 어렴풋이나마 짐작 하였을 것이리라. 지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글에서는 말할 수 없는 상황이 끝나면, 그때는 아마도 연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그런데 그때는 몰랐다. 우리 역시 잠시 동안 시절의 인연인 시절인연(時節因緣)이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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