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를 봤다. 예전에 기억을 떠올려 보면 비지터[각주:1]를 봤었고 이웃집에 신이 산다[각주:2]도 봤었다. 사실 독립영화는 상영하는 극장도 드물어서 볼 기회도 그렇게 없을 뿐더러 상업영화처럼 사실상 재미있는 영화라는 인식도 없어서 더더욱 잘 안보게 된다.
어쩌다 기회가 닿아서 보게 된 가버나움. 영화를 보고 나서 드는 생각은,
짜증난다
이런 생각은 예전에 도가니를 보고 나왔을 때와 비슷한 기분. 지금 내가 숨 쉬고 있는 이 순간에도 영화에서 봤던 일 들이 주위에서 당연하게도 일어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
검색을 해 보니 가버니움은 성경에서 나온 지명이름이라고 한다. 예수님 제2의 고향이라고 하기도 하고, 더 찾아보니 매우 유명한 성경 구절인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마4:19
이 구절의 배경이 되는 지명인 것 같다. 매우 번화한 곳이었지만 회개하지 못하여 예언으로 파괴된 도시이다. 구체적으로 이야기는 못하겠지만 그러한 배경을 가지고 이 영화를 보고 나니 조금 더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현재도 치열하게 살아가는, 또 그 치열함을 피해 다른 나라로 도망 가 있는 사람들에게 연민이 생긴다.
그리고 현재 '카파르나움'이라는 이름으로 검색 해 보면 나오는 실제 있는 지명이다.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사람이 있는가? 가난하고 싶어서 가난한 사람이 있는가? 이런저런 생각을 깊게 할수 있는 시간을 준 영화.
보고 나면 기분이 썩 좋지 않기 때문에 꼭 보라고 추천 하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재미가 있는 영화도 아니기 때문에 더더욱 추천 하고 싶지는 않다. 보고싶은 영화가 있고 봐야만 할 것 같은 영화가 있다. 이 영화는 둘 다에 해당하지는 않지만 따지자면 후자에 가깝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아래로는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으니 괜찮은 사람들만 볼 것.
나를 태어나게 했다는 이유로 부모를 고소한 소년. 도대체 왜 그렇게 되었을까가 궁금해지고, 이야기가 전개되기 시작한다.
나무로 장난감 총을 만들어 뛰어노는 것이 고작인, 지옥과 다를바 없는 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 특별한 직업이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집세 올리는 것이 두려워 딸 중 하나(사하르)를 내다 팔듯 집 주인에게 시집 보내는 부모. 아이에 대한 양육을 감당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밤에는 섹스로, 또 아이를 임신하는 무책임한 부모.
그 속에서 살아가는 아이(자인)는 어릴적 부터 뭐랄까.. 생존에 특화 되어 있다. 가짜 처방전으로 약을 구입해서 주스를 만들어 팔고, 그 주스를 또 기가막힌 방법으로 감옥에 있는 친척에게 건네주고, 물건을 훔치고, 각종 앵벌이 등등. 부모가 엉망진창인 상황에서 아이가 형제자매를 챙기는 모습을 보면 기가 막힌다. 결국 아끼는 여동생이 팔려가듯 시집을 가게 되고, 가출을 감행하고 마는데,
바퀴벌래맨을 따라서 내린 놀이동산에서 한 에티오피아 여성(라힐)을 만나고, 그 사람 집에서 가출하기 전에 했던 것 처럼 젖먹이(요나스)를 돌봐주며 생활하게 된다. 그 라힐도 불법체류자이기 때문에 하루하루 불안하게 살아가고 있었고, 결국은 체포. 다시 홀로 남겨진 자인와 더 어린 요나스는 또 그저 살아가기 위해 약으로 만든 주스를 팔고, 앵벌이 하고, 물건을 훔치며 살아간다. 그러다가 만난 한 여자아이(메이소운)의 말을 듣고 그 삶에서 벗어나 스웨덴으로 떠나기 위해 본인이 존재하고 있다는 증빙서류를 구하려고 다시 원래 집으로 갔다가 임신으로 인하여 죽어버린 사하르의 복수를 하다가 경찰에 체포..
라힐이 아이가 있다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감옥에서 젖을 짜 내 버리는 장면, 자인이 요나스를 버리려고 몇번 시도하다가 다시 돌아오는 장면 등은 정말 깊은 한숨을 쉬게 만들었다.
이 영화 감독의 연출이 정말 대단한 것이 자인의 부모의 행동을 보여주고 사람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리고 이후 라힐을 만나고 라힐이 체포된 이후 자인의 행동을 대비하여 보여줌으로써 또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일부러 동일한 행동을 많이 겹치게 보여주는 것 같다. 자인의 부모는 젖먹이 아기가 어디 다른데 가지 못하도록 쇠사슬에 묶어 두었다. 그리고 자인은 그 쇠사슬을 풀어주는 행동을 하였다. 하지만 나중에는 자인이 요나스의 발을 끈으로 묶어 버린다. 물론 금방 다시 풀어주기는 하였지만.. 그리고 아스프로(불법 체류증 브로커)에게 요나스를 넘기면서 돈을 받는 장면 역시 자인의 부모가 사하르를 집 주인에게 시집보낼 때와 겹쳐 보이게 연출 했다.
처음에는 자인의 부모를 천하의 개썅놈으로 보이게 연출을 했지만 결국 자인도 똑같은 행동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법정에서 자인의 부모가 자신을 변호하는 장면도 같이 보여주면서 과연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를 생각 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비참하게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자인의 부모들을 비난할 수 있는가? 물론 부모의 역할을 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충분히 비난할 수 있겠지만, 시작점 자체가 다른 사람들에게 너무 큰 비난은 버거울 것이다.
너는 그렇게 태어났으니 그렇게 살아라. 그것이 니 운명이다. 네 부모가 조금 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사회에 이름이 있었다면 니가 그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다. 노오오오오오력을 해야 한다. 이런 말을 쉽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이렇게 모니터 앞에 앉아서 손가락을 두드리고 있는 나 조차도 부유한 집안의 아들새끼는 아니니까.. 그리고 이 사회의 보호장치라고 할 수 있는 복지에 구멍이 나 있고, 그 구멍으로 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빠져서 해어나올 수 없는 것이 과연 그 사람들이 가난하기 때문이기만 한 것인가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물론 이 영화에서 시사하는 부분이 복지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전쟁이 있고, 기아가 있고, 그 결과로 난민이 발생하는 복합적인 문제가 현실에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