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기록장/여행

4.3 #삼진의거 발자취 #8의사묘역 #성구사

hwangdae 2019. 9. 26.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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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창원시 공식 블로그에 송부 되었거나, 송부 될 글입니다. 따라서 동일한 내용으로 창원시 공식 블로그에 포스팅 될 수 있습니다. 본 글에 대한 모든 저작권은 작성자와 창원시에서 공동으로 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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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시 공식 블로그에 포스팅 된 글

https://blog.naver.com/cwopenspace/221663544579

불러오는 중입니다...

2019년은 4.3삼진연합대의거 100주년입니다. 100주년을 맞아 올해는 기념식 및 재현행사도 진행 하였습니다만 창원에서 생활하고 있는 저 스스로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라 이번 포스팅을 준비하면서 부끄러웠습니다.

본 포스팅을 시작하기에 앞서 짧은 영상을 두 개 보시겠습니다. 첫 번째 영상은 위에서 언급 한 창원시에서 4.3삼진연합대의거 100주년 기념행사에서 진행 된 익스트림 태권도 미르메 팀의 퍼포먼스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영상은 의거의 전체적인 내용을 대략적으로 소개 해 주는 영상입니다. 가볍게 훑어 보시면 좋을 것 같아 영상을 찾아 보았습니다. 배우 안성기씨의 멋진 목소리와 함께 감상 하시죠.

https://youtu.be/YvM3yW9yxtM

https://youtu.be/GCXtNx4-FTI

삼진의거는 19193.1독립만세운동을 이끌었던 전국 4대 의거(수원 제암리, 평안도 선천읍, 황해도 수안) 중 하나로 평가받을 정도로 그 역사적 의미가 남다른 의거라고 합니다. 3.1독립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대가 되었고 (당시)마산에서도 만세가 일어난 것입니다. 4.3의거가 3.1독립만세운동의 전국적인 확산에 기여하게 된 것이라는 평가와 함께 이후 창원에서 일어난 수많은 항일투쟁운동과 창원지역 민주화운동의 초석이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191943일 현재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진전면/진북면의 3개 지역의 주민이 연합하여 봉기한 만세 시위이고 3개 지역의 주민이 연합하여 봉기 한 만세 시위는 4.3삼진의거가 유일하다고 합니다.

이렇게 격렬한 항일운동을 전개하는 도중 안타깝게도 일제의 총칼에 많은 사람들이 희생 되었습니다. 특히 이 당시 순국하신 8명의 의사들을 한 자리에 모시고 있는 묘역이 있습니다. 바로 8의사묘역이라고 불리우는 곳인데 정말 안타깝게도 찾아가기가 어려웠습니다. 각종 네비게이션, 인터넷 지도에 ‘8의사묘역으로 검색해도 나오지 않아 겨우겨우 찾아간 곳입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창원시청에서 약 1시간 40분 정도 소요가 됩니다. 자차를 이용하신다면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양촌리 198’로 검색하시고 가시면 됩니다.

삼일독립만세순국팔의사묘역

근처에는 별도의 주차장이 없습니다. 자차를 타고 가신다면 지나가는 차량의 통행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잘 주차를 해 놓으시고 입구에 보시면 안내 입간판이 있고 조금만 더 들어가시면 기념비를 찾으실 수 있습니다.

입구를 지나 곧개 뻗은 길을 따라 들어가면 삼진의거에 대한 소개와 함께 당시 희생되신 분들과 함께 형을 받으신 분, 부상을 입으신 분들의 명단이 나와 있는 비석이 있습니다. 여기서 부상을 입으신 분들의 명단은 그 당시 확인이 가능했던 사람들만 기록이 되어 있다고 하니 실제 일제의 총칼과 폭행에 부상 당하신 분 들은 더 많을 것으로 추정 됩니다.

안쪽에는 넓은 공간에 8의사들의 묘소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는 각종 기념행사 등에 사용할 수 있는 제단이 놓여 있습니다. 여기 있으신 분들의 희생으로 지금의 우리가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숙연해 집니다. 별 생각 없이 방문 했던 장소이지만 묘지를 볼 때 꽃이라도 한송이 준비 해서 올걸..’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돌아서 나오는데 보이는 해질녘의 태극기가 보입니다. 끝이 조금 닳아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리고 큰길로 통하는 작은 길 옆에 피어 있는 무궁화가 유난히 눈에 띕니다.

전국 4대 의거 중 하나로 불린다고 할 정도로 역사적인 의미가 깊지만 전체적인 관리가 조금은 부족해 보이는 아쉬움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부터 관심을 가지고 기억한다면 창원시만의 의거가 아닌 대한민국 국민들이 모두 기억하는 근현대사의 한 부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 봅니다.

 

팔의사묘역을 나와 성구사로 이동 했습니다. 1km 남짓 되는 거리로 도보로 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에 있습니다. 성구사는 1985년에 건립 된 세 충신(문하평리공 변민, 병조판서공 변연수와 변립 부자)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곳입니다. 성구사를 구성하고 있는 건물 중 도산서당과 일신재, 존양재는 근대적인 학교가 설립되기 전 까지 교육기관의 역할도 해 왔다고 합니다.

이러한 기능을 했던 건물이기는 하지만 이번 8의사 묘역과 함께 성구사를 찾은 이유가 바로 4.3삼진의거때 성구사 일원에서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만드는 등 거사를 모의한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의미 뿐 아니라 성구사는 그 자체로 조선조 건축양식을 지닌 목조건축물로 그 보존가치가 높아 경상남도 기념물 제245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제가 조금은 늦게 도착해서 그런지, 아니면 원래 개방을 하지 않는지는 알수 없었습니다만 아쉽게도 문이 잠겨 있었습니다. 다만 담벼락이 낮아서 뒤쪽의 공터나 임시로 나 있는 길을 따라 올라가서 내부를 사진으로 담아올 수 있었습니다.

성구사 앞에는 논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습니다. 아직 한낮은 덥지만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하다는 느낌보다 살짝 춥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가을이 어느 순간 다가 와 있습니다. 지금은 저 벼들이 조금 더 여물어 고개를 숙이고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 곧 10. 2019년의 4/4분기가 시작 되기 직전입니다. 2019년은 창원시 근현대사에 있어서 매우 의미있는 해가 될 것입니다. 처음에 언급한 대로 기미년 4.3삼진의거가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또한 일제의 강제 개항이기는 하지만 기억해야 할 마산항 개항 120주년이 되는 해이며 대한민국 51번째 국가기념일로 지정 된 부마민주항쟁의 4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렇게 창원시는 근현대사에서 역사적으로 매우 굵직한 사건들이 많았던 지역입니다. 지금은 현대적인 도시, 환경수도, K-POP의 중심도시 등으로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지만 이 포스팅을 보시는 여러분은 오늘 하루정도라도 창원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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