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기록장/여행

국립 3.15 민주묘지

hwangdae 2021. 8. 3.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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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원 / 창원 랜선 여행]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여름 국립 3.15 민주묘지를 찾았습니다

온라인홍보 명예기자단 황대성 <취재 당시 마스크 착용, 사회적 거리 두기 등 방역수칙을 준수하여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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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햇볓이 내리쬐는 여름 국립 3.15 민주묘지를 찾았습니다.

통상 민주화의 성지라고 하면 5월의 광주를 떠올립니다. 5.18 민주화운동은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대한민국에 민주화를 가져 온 가장 유명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1980년 5월이 되기 20년 전 인 1960년 당시 마산에서는 4.19혁명의 전신이 되었다고 할 수 있는 3.15의거가 있습니다.

부정선거에 반발하여 일어난 의거로 너무도 유명한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전국적인 시위인 4.19혁명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1, 2차에 걸친 마산, 창원지역의 지역의 시위는 4.19혁명으로 이어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면서 결국 이승만 정권을 붕괴시키게 되었습니다.

2003년에는 경상남도의 조례가 만들어지면서 기념일을 진행 하였고, 2009년에 되어 마침내 국회에서 국가기념일 제정 관련 법안이 통과 되면서 2010년에 정식 국가기념일로 공포가 되어 있습니다.

창원에서는 거의 매일 30명 가량의 코로나 확진자가 나옵니다. 따라서 거리두기 단계가 3단계로 진행 중인데 안타깝게도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하여 민주묘역 내부 여러 장소들이 문을 닫아 놓은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실내 시설만 통제가 되고 있고 외부 묘지 등은 개방이 되어 있기 때문에 민주열사님들께 참배를 하고 싶으신 분 들은 부담없이 찾으셔도 괜찮겠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기념관 입구까지 올라 갔지만 굳게 잠겨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입구에 붙어 있는 보훈콘텐츠 공모전 포스터가 눈에 띕니다.

민주화에 큰 줄기가 되는 지역에 살고 있지만 이렇게 참배를 온 것이 처음이기도 하고, 이렇게 보훈 행사나 공모전이 있다는 것도 사실 이번에 처음 알게 되어 부끄러운 마음이 듭니다. 영상, 그림, 글 등에 재주가 있으신 도민들께서는 한번 도전 해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상금도 있으니 좋은 작품을 통해서 국민들에게 보훈의 마음을 되새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 해 보시는 것은 어떠실까요?

기념관을 지나서 묘역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묘역쪽으로 가다 보면 넓은 광장을 지나게 되는데 이 광장에는 참배를 할 수 있는 향로가 가운데 놓여 있습니다. 기념일에 TV나 신문기사에서 보이던 바로 그 장소입니다.

이 광장의 그 뒤로는 ‘정의의 벽’이라고 이름 붙은 조형물이 있습니다. 민주의 횟불이 있으며 3.15정신을 계승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작품이 설치가 되어 있습니다. 향을 피울 수는 없었고 광장을 지나 유영봉안소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유영봉안소는 의거 당시 희생자들의 영정과 위패가 모셔져 있습니다. 앞서 언급드린 것처럼 지금 현재는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하여 문이 굳게 닫혀 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번 방문해서 이 시대를 살게 해 준 밑거름이 되어 주신 분들에게 참배하고 감사한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묘지를 오르면서 민주화 투사 한분한분의 이름을 마음속으로 읽어 봅니다. 묘비에 보면 이름과 함께 사진이 함께 있습니다. 당시는 지금의 저보다 훨씬 어렸을 것으로 보이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다시 한번 감사한 마음을 가집니다.

3.15 의거에서 가장 유명하신 분이 누구실까요? 가장 유명하다는 표현을 감히 쓰기가 부담스럽습니다.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고 표현 하기도 조심스럽습니다. 소중한 목숨을 담보로 하신 모든 분들에 경중을 둘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한분을 뽑자면 바로 김주열 열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김주열 열사의 묘지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어렵지 않다는 것은 광주에 있는 국립5.18민주묘지의 그것과 비교해서 묘지 수가 많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른 모든 분들과 동일한 크기에 동일한 비석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별히 크거나 뽐나는 그런 묘지가 아닙니다. 바로 모든 민주화 운동을 했던 분들에 대해서 경중이 없다는 뜻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제일 높은곳에 올라가 보면 빈 묫자리가 있습니다. 빈자리가 많이 있다는 것은 그 만큼 당시 희생되신 분들의 수가 적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아직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한분이 많다는 말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시 목숨바쳐 민주화를 위해 희생 하셨지만 이름도 연고도 모르게 있으신 분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분들은 하루라도 빨리 이 곳으로 모시고 예우를 갖출 수 있게 되면 좋겠습니다.

묘지를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에 비탈길이 눈에 띕니다. 처음에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이렇게 비탈길을 만든 이유는 아마 몸이 불편하신 분 들도 참배에 무리가 없도록 하기 위한 설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세심한 부분까지 배려가 되어 있는 곳이 우리 지역에 있다고 생각 하니 자랑스럽습니다.

올해 2월 말에 성산아트홀에서 진행 했던 ‘도시의 얼굴들’이라는 연극을 관람한 적이 있습니다. 이 연극을 볼 때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부정에 분노하여 길거리로 뛰쳐나간 사람들이 정말 특별하고 위대한 영웅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냥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학생들, 직장인들, 주부 등등. 정말 일반적이고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과연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기에 이러한 일이 벌어진다면 과연 나는 길거리고 뛰어나가서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좋은건 좋다, 싫은건 싫다 목소리를 자유롭게 낼 수 있는 시대가 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분 들의 희생이 있었을까 생각 하면 절로 숙연해 집니다.

우리나라의 민주화운동 역사가 없었다면 과연 이렇게 눈부신 대한민국 발전을 이루어낼 수 있었을까요? 지금 우리가 이렇게 풍요로운 생활을 할 수 있었을까요? 호국보훈의 달이라고 하는 6월도 지났고, 3.15의거 기념일이 있는 3월도 아닙니다. 하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마음 속에서 그 분들을 항상 생각하고 기리는 마음은 가질 수 있다고 생각 합니다.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많은 분 들 지금 잠시 묵념하는 시간을 가져 보심이 어떨까요? 이름이 유명한 열사들도 많이 있으시지만 이름 없이, 빛도 없이 희생하신 분 들을 위한 시간을 지금 이 순간 잠시 가졌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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