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일은 다 쉬고, 공휴일은 다 쉬는 그런 직장에 다니다 보니 딱히 별도로 시간을 내어 '휴가'라는 것을 간 적이 없다. 애초에 해외 욕심도 없고.. 그러다 문득 휴가를 다녀오자는 생각이 들었고 금요일, 월요일 연가를 쓰고 목요일 광복절을 활용 한 4박 5일, '시골영감서울구경'을 다녀왔다.
서울은 업무상 출장만 갔지 '놀러'로 가 본 적이 없는 것 같아 '경주=불국사', '제주도=한라산', '전주=한옥마을'과 같은 가이드북에 나올법한 대표 여행지를 갔다왔다. 어쩐지 시리즈물이 될 것 같아 서식을 활용해서 기본 베이스를 깔고 시작 해 보도록 한다.
지출 비용 정리(지하철, 버스 등 시내대중교통 제외)
내역: -
-
합계: -
누적합계: 232,626
명동성당 구경을 다 하고 나서 근처 스타벅스에 자리를 펴고 앉았다. 가볼 곳을 정해는 놓았지만 동선을 정확하게 정하지 않았기에 어디를 가 볼까 하고 실펴 볼 심산이었다. 지도를 보니 통칭 DDP라고 불리는 동대문디지털프라자가 생각보다 가까웠다. 사실 광화문광장과 경복궁이 조금 더 가까운 듯 하기는 했지만 시간이 늦어 경복궁 입장 자체가 되지 않을 것 같아 동대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대중교통과 걷기 시간이 비슷하게 걸려서 무슨 생각에서인지 그냥 걷기로 했는데, 이게 실수였다. 예를들어 대중교통과 도보 모두 20분 걸린다고 하면 선뜻 걸어갈까? 하고 생각을 하게 된다. 걸어도 20분인데 버스나 지하철 타도 20분이면 엄청 둘러가는구나.. 라는 생각? 둘러가도 타야 하는게 맞는데 나는 20분 동안 '걸어'야 한다는 뜻을 바로 파악하지 못했다.
어쨌든 그렇게 하릴없이 걷다 보니 세운상가를 거쳐서 가게 됐다. 원래 가고자 계획했던 곳은 아닌데 세운옥상이라는 공간을 들어본 적이 있는데다, 전자제품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어쩐지 성지같은 기분이 들었다.
명동성당에서 DDP로 가는 길에 보였던 골목이다. 보통 '서울'이라고 하면 화려하고 고층건물이 쭉쭉 뻗어있는 발전 된 도시를 생각하게 되는데 이런 골목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이 당시 느낀 감정을 조금 표현하고 싶어서 보정할 때 채도를 일부러 좀 뺐다.
화려한 네온사인도 아닌 이러한 낡은 양철간판(?)에 가게들이 즐비한데, 휴일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다들 셔터를 내리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생각 했을때 내가 손님이면 이런 외관을 가지고 있는 가게에 선뜻 발을 들이지 못할 것 같기는 하다는 생각이 든다.
골목의 거의 끝에 있던 금속으로 만든 바람개비.
대로와 만나는 지점에서 보인 현수막이다. 아마 옛날에는 활기찼던 골목이 아닐까? 시대가 변하고 상황이 변하면서 사람들이 떠나가고 이렇게 낙후된 골목으로 된 것 같다. 그래서 아마 재개발이 들어가는 것 같기는 한데 항상 그렇듯 공사를 진행하는 측과 원주민측과의 갈등이 있는 듯 하다.
골목을 나오니 어느 순간 보이는 세운상가. 세운옥상이라는 곳이 있고 앞에 로봇도 있다고 들었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가 않는다. 뭔가 잘못왔나 싶기도 하고 내가 찾아 본 정보가 너무 예전 정보라서 지금과 많이 달라졌나 싶기도 해서 불안했다.
일단 안으로 들어 가 보니 각종 전자관련 가계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다시세운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개발을 많이 진행 중이라는 것 같은데 썩 그렇게 개발 느낌이 들지 않는다. 통일된 간판 등으로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 있기는 한데 첫 느낌은 '복잡하다'라는 느낌. 활기찬 세운상가를 본 적이 없고, 저 날 한번 본 것일 뿐이라 뭐라 이야기 할 수는 없지만 상가 내부는 크게 인상적이지 않았다. 합성동 지하상가가 더 깔끔하고 밝은 분위기라고나 할까..? 내가 든 첫인상은 죽은상권이 아닌가 싶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옥상층을 누르고 올라갔는데 옥상을 올라가지 못하게 막혀 있었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내가 반대쪽으로 올라갔던 것. 종묘 방향에서 보이는 세운상가가 통상 '세운광장'이 있는 정문이고, 나처럼 청계천 방향에서 들어오면 뒤쪽으로 들어온다고 보면 된다. 어쨌든 덕분에 세운상가 고층의 안쪽을 볼 수 있었는데 오피스텔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그런 모습이었다. 각 방마다 작은 작업실 또는 간판을 달고 조그만 기업(이라고 해야 할까나)이 운영되고 있었다. 홍콩의 아파트 하면 떠 오르는 이미지랄까나..? 좁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하고 있는 모든분들 존나 파이팅.
세운상가와 그 뒤 청계상가 도로를 가로짓는 고가다리에 올라가니 청계천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저 위를 예전에는 도로가 덮여 있었다니 상상이 되지 않는다. 이명박에서 오세훈으로 까지 이어지는 전임 서울시장들의 가장 큰 업적 중의 하나일까나..? 서울에 살지 않아서 이해관계가 어떻게 얽혀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각종 문화행사 및 회색빛의 도시에서 시민들의 좋은 휴식공간이 되어 주는 장소로 알고 있다.
지금 사람들에게 서울의 랜드마크를 물어보면 아마 잠실에 있는 롯데월드타워를 많이 이야기할 것 같은데 여전히 서울 하면 '남산타워'를 생각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싶다. 이번 여행을 다닌 기준으로 해서 어디서든 남산타워가 보였던 것 같다. 실제로 올라간 후기도 나중에 적기는 하겠지만 자체로 높이는 그렇게 높지는 않다고 느껴지는데 산 위에 있기 때문에 아마 더 티가 많이 나지 않았나 싶다.
세운상가 뒤로 시작해서 한바퀴 돌아 앞까지 나오니 보이는 로봇. 인터넷에서 봤던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냥 조형물이 아닌가 싶었는데 움직이면서 말도 해서 깜짝 놀랬다.
여담이지만, 즐겨듣는 팟캐스트 중 '파토의 과학하고 앉아있네'에서 듣기로 실제로 인간 모양의 로봇은 이렇게 절대 서있을 수가 없다고 한다. 꼭 만들겠다고 한다면 건담에 나오는 '자쿠'와 같이 다리 부분이 두껍고 튼튼해야 겨우 직립을 할 수 있다.
밑에서 보이는 세운상가의 간판과 세운옥상 간판. 올라서서 보면 어떤 모습일까 잔뜩 기대가 되었다. 나는 구름다리를 통해서 건물을 한바퀴 돌았지만 종묘 방향에서 세운광장을 통해서 오는 사람들은 1층에서 바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갈 수 있다. 바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2층에서 잡아타니 조금 뻘쭘한 기분이 들더라.
엘리베이터를 내려서 들어가면 이렇게 이정표가 보인다. 목적지는 옥상이지만 '전망'이라는 단어에 한번 구경하러 가 보기로 했다.
그런데 보이는 모습이 매우 충격적. 이 글의 위에서 언급했던 낡게 보였던 건물들이 바로 세운4구역인 것 같다. 포스팅을 하면서 이런저런 검색을 해 봤는데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이 되어 있는 것 같다. 재개발 이슈가 있으면 언제나 나오는 뉴스가 기존 주민들에 대한 보상 이야기다. 세운4구역 역시 마찬가지인 것 같다. 자세한 내역은 잘 모르겠지만 기존 원주민들은 해당 자리에서 영업을 하며 생계를 꾸리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조심스럽지만 내가 봤던 골목의 첫인상은 말 그대로 죽은골목 또는 죽은상권이었다.
시간이 가고 세대가 바뀌고, 시대가 바뀌고 계속해서 변화하는 요즈음이다. 물론 지켜야 할 옛것들도 있고, 가치로 매기기 힘든 그 무언가가 있다는 것도 인정은 하지만 '버티면 뭐하나'하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다. 우리 동네에도 옛날에 잘나갔던 '창동'에 도시재생이라는 명목으로 어마어마한 돈을 붓고 있는데, 창동을 갈 때 마다 드는 생각은 '돈아깝다'이다. 각종 예술인들을 모아서 예술촌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 놓고, 바닥에는 세계 각국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있는 타일로 깔려 있는데 그런다고 사람들이 모여들까? 주말에 가 봐도 창동 전체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상남동 한블럭에서 볼 수 있는 사람 수 보다 작다고 느끼는데 과연 어떤 지원을 얼마나 해야 죽은 상권, 죽은 골목이 살아날까? 참 어려운 문제다.
옥상으로 올라가니 조명이 켜져 있다. 그렇게 늦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날도 흐리고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위에 지붕은 없지만 조명 뒤로는 이렇게 의자들이 놓여 있다. 맑은 날이었으면 앉아서 잠시 쉬다 갔을 것 같은데 비도 오고 해서 의자가 다 젖어 있어 앉아보지는 못했다. 이렇게 줄줄이 의자들이 놓여 있고 예쁜 조명이 켜져 있어 세운옥상은 일부러라도 한번 찾아 올 이유는 있어 보이기는 하다.
옥상을 한바퀴 하고 있는데 저 멀리로 무지개가 보인다. 여행 첫날부터 버스도 놓치고, 비도 오고 짜증이 조금 나 있는 상태였는데 정말 백만년만에 무지개를 보니 짜증이 눈녹듯 사라진다.
이번 서울여행 중 갈 목적지 중 하나인 종묘. 나중에 별도로 포스팅을 하겠지만 차분한 모습을 보여준다.
시간이 많이 흘러서 해가 떨어지고 있다. 세운상가에서 종묘 방향으로 바라봤을 때 오른쪽은 건물들이 낮고 개발이 덜 된 느낌(위의 세운4구역 전망대와 무지개 사진 참조)이지만 왼쪽으로 바라보면 온갖 고층건물로 화려한 모습을 보인다. 멋진 노을을 찍고 싶었는데 내공이 부족한 것을 탓하면서.. 이게 서울이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될 정도. 세운상가가 남북방향으로 길다고 생각하면 왼쪽은 광화문광장 및 서울시청 방향이고, 오른쪽은 동대문 방향이라고 보면 된다.
아무 의미도 없는 옥상일 수 있지만 이렇게 꾸며 놓고 홍보를 하니 사람들이 찾아오는 명소가 되었다. '다시 세운'이라는 프로젝트로 세운상가 살리기를 하고 있는데 제법 성공적인 것 같다. 뜬금없지만 지하에 유적지가 발견이 되었고 이 유적지를 어찌하기가 뭣한 나머지 그냥 건물을 공중에 띄우듯이 만들어 놓은 모습도 독특했고 지하에 있는 컨퍼런스 룸이라고 해야할까? 무대라고 해야할까? 하여튼 거기서 뭔가 모임이 진행되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서울에 살지 않는 나이기에 세운상가의 접근성을 잘은 모르겠지만 홀을 꽉 채운 사람들을 보고 있으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서울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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